직지프로젝트가 둥지를 틀고 있는 서버는 1995년 경 한국에서 Kornet 소백에 개인 계정 서버 (~/minsukim), 1998년 5월 https://jikji.org 정식 누리집 주소를 받은 다음에는 '넷티스네트(www.netisnet.co.kr)'에서부터 “정보대국의 디딤돌, 직지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다.
Free라는 단어를 공짜가 아닌 자유로 인식하고 그 자유를 구성하는 성격 중 하나가 '열려있음'이라고 믿어왔던지라, 직지가 돌리는 서버는 무명 ftp 계좌까지 열어놨는데, 어떤 악성 사용자가 이를 이용해서 자료를 저장하고 내려받는 매개로 이용했다. 문제는, 이로 인해 발생한 전송 트레픽에 대한 비용을 엄한 내가 혹독하게 치르게 되었고, 이를 통해서 자유는 정말 공짜가 아니라는 사실을 절실함게 느끼게 되었다. 사람이 본질적으로 손실에 민감하다고 하는데, 직지프로젝트 초기부터 개인 돈 들여 푼돈 아껴가며 돌리는 서버였기에 그 때 받은 느낌은 강렬했고, 추가 비용을 몇 달에 걸처 분납했던 그 경험을 통해서 인터넷세상에서는 '알아야 자유를 유지할 수 있다', 라는 것을 체득했고, 그 이후로 이를 실천하려 하고 있다.
꼭 그 사건 때문은 아니겠지만, 상당부분 그 이유로 비용절감 및 서버 유지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고자 1999년 말경부터 2000년 경부터 이천 주공 아파트에서 ADSL 사설 IP를 이용한 개인 독립 서버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정확한 시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내가 FreeBSD에 개인적인 인연을 맺기 시작한 건 이 때부터였고, FreeBSD 3.8 / 4.1 판수로 기억한다. 이 당시에 알짜리룩스, Redhat, Power Linux 처럼 서버를 돌릴 수 있는 Linux 계열 운영체제도 있었는데, 역시 자유라는 단어에 끌려, C 언어를 배울 때 느꼈던 Unix에 대한 매력, 그리하며 정통 Unix 기반이라는 것에 끌려서 FreeBSD를 선택한 것이 지금에 이르렀다. 이때 영진출판사에서 발행한 <About FreeBSD>란 책을 사서 읽은 기억이 있는데, 지금은 뭘 읽었는지도 기억을 하지 못한다는ㅠ.ㅠ 이 책을 통해서 최준호 님과 “FreeBSD 한국 사용자 그룹”을 알게되었다. 이 자리를 빌어 한글, 특히 옛한글을 인텃넷에 제대로 표현하는 방법에 관해서 짜증스럽다 싶게 질문을 한 내 과거행적에 대해서 죄송하게 생각하고, 빠른 해답을 원하는 나에게 답을 찾는 방법을 보여준 많은 분들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한국에서의 개인 독립서버도 잠시였고, 2001년 미국으로 직장을 옮기면서 다시 넷티스넷(그 이후로 호스트와이드:http://www.hostwide.net/ 가 되었다)에 직지 서버를 옮겼다. 인테넷 측면에서 2001년 미국은 충격이었다. 정보초고속도로를 주창하는 나라에서 아직도 14.4k BPS 모뎀을 이용한 전화선으로 인터넷을 연결한다니, 아니 이건 무슨 과거로의 회귀??
내가 미국으로 직장을 옮긴 이유 중 하나는 한국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아메리칸 드림'도 있었지만, 또 다른 이유는 직지프로젝트를 할 수 있는 저녁이 있는 삶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내가 예상치 못했던 건 외국 생활이 결코 녹록하지 않았다는 것과 '직지'라는 것을 한국 밖으로 들고 나오니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졸지에 없어졌다는 사실이었다. 사물인터넷을 말하는 현재 2021년 시점에서 보면 세상이 많이 다르겠지만, 2001년 환경으로 돌아가서 생각해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2000년대 중반부터 그 광활한 땅에 구리선을 깔아서, 아니 깔려 있는 선을 재활용해서 케이블 선으로 고속 인터넷을 지원하기 시작했는데, 몸은 미국에 있는데 서버는 한국에 있는 사실이 많은 것을 불편하게 해서 결국 미국에서 IP를 받아서 독립서버를 설치했다. FreeBSD 6.x대 였고, 한국에서 비싸게 지불하고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Sun (태양; 방화벽 서버), Mercury (수성; 주서버), Venus (금성;부서버), Earth (지구; 윈도우 기반 컴퓨터), 난 화성은 사실 싫었어, Jupiter (목성; 내 연습 서버)로 서버를 몇 대나 설치하고서 방화벽 안에서 DNS/PostFix/Apache 등을 설치했고, 그 때 서버 관리에 대한 많은 것들을 배웠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여름이고 겨울이고 후끈했던 내 방이자 서버실은 그렇게 태양계를 집 안에 들일 목적으로 시작을 했지만 Mars(화성)를 들이지 못한 채로 끝났다. 그 때 했던 일들을 제대로 기록하지 못한 것이 이제는 조금 후회가 된다. 사실 서버에서 돌아가는 모든 무른모는 직지프로젝트를 위한 수단이었지 목적이 아니었었으니[(물론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다르다. 개인이 일생동안 읽고 쓰면 만들어 내는 자료를 누리터에서 자유롭게, 그리고 어디에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해 주는 이 무른모에 대한 이해 자체가 어쩌면 '정보대국의 디딤돌'이 아닐까 하는 꿈을 꾸고 있다.)]….
그래도 직지에 대한 열정이 아직도 남아 있는지, 직지서버를 더 경제적으로 돌리기 위해서 지금도 애를 쓴다. 이 글은 그 애를 쓴 과정을 이제라도 기록으로 남기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더 이상 FreeBSD 설치에 대한 글은 안 써도 될 거 같다^^. 이거 하나로 두고 두고 내 스스로가 참조하면 될테니까… 직지프로젝트 시작한 25년 경 만에 한글을 제대로 지원하지 않는 Unix[(예로 한글이름이 들어간 문서는 깨져 보인다)]에 대한 불평, 불만을 더 이상 토로하지 않고, 그저 많은 사람들이 수고하여 만든 인터넷 환경, 특히 옛한글 구현에 대한 현 상황[(예로 직지살림 – 읽고 베껴쓰고 공부하는 책세상은 네이버에서 만들어 제공한 나눔글꼴로 옛한글 표현이 가능하다)]에 깊은 감사를 드리고, 이제부터는 인터넷을 처음 접했을 때 내가 생각했던 '책', 그러니까 모든 정보가 글자와 그림으로 연결되어 인류 지식이 하나스럽게 연결된 넓으며, 열려 있고, 그리하여 더 자유로운 세상을 구현하는 '책'[(여기서 수학적 기호를 표시하기 힘든 인터넷 환경을 또 한 번 받아들이게 된다. 막스웰방정식, 쉬뢰딩거 방정식도 제대로 쓸 수 없는 Facebook을 많은 사람들이 아무런 불편,불만 없이 잘쓰고 있다는 것을 나는 사실 잘 이해하지 못한다. 하긴, MathJax, LaTeX 같은 것들로 수식을 표현하는 것은 옛한글 표현과는 좀 다른 차원의 어려움이기는 하다.)]을 만드는 데 시간을 더 쓰고 싶다.
마지막으로 이 글이 많은 사람들이 기업체에서 제공하는 서비스 굴레[(나 또한 서버를 옮기면서 궁극적으로 Apple에서 제공하는 iCloud 서비스를 해지하는 것이 목표 중 하나이며,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시점인 2021년 1월 4일, ownCloud를 성공적으로 설치하여 그 목표를 달성했다. 2TB 공간을 쓰고 있던 iCloud를 2월부터는 해지했다.)]를 벗어나 자신이 생산하는 자료를 자신이 운영하는 서버에 기록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직접 공유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기초가 되기를 바란다.